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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미사(연미사) 란 ? ( NO 1 )

작성자 실로암
작성일 21-02-26 12:01 | 3,827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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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가톨릭대학교 이완희 신부님께서 신학교 홈페이지 신학강좌 - 전례 자료실에 올려주신 자료입니다.

 

[위령미사(연미사)?]

1. 들어가는 말

죽은 이들을 위해 봉헌하는 미사를 위령미사라고 한다.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하여 미사를 봉헌하는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들이 상호간에 영신적인 도움을 주며 다른 지체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이다(미사경본 총지침 335).

 

따라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 교회가 죽은 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바치는 미사성제가 위령미사이다.

 

2. 위령미사의 역사적 발전과정

 

미사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요약할 수 있는 파스카 사건의 재현이다.

따라서 초대교회 때부터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가 매주일에 거행되었다.

처음에는 주일에만 거행되던 미사가 평일에도 거행되기 시작하였고 여러 가지 다른 성사 및 준성사와도 연결되었다.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봉헌하는 미사를 위령미사라고 한다.

 

위령미사가 이미 2세기부터 봉헌되었다는 흔적을 Aristides의 호교론과 위경인 요한행전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H.J.M.Milne, A new fragment of the Apology of Aristes, 25p.75M.J.James, The Apocryphal New Testament, Oxford, 1945 참조).

 

또한 3세기경에, 떼르뚤리아노(Tertullianus)는 죽은 이를 위한 기일 미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De Corona PL 2: 79/ De Castitate 11, PL 2: 926).

 

4세기까지의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로마의 관습을 따랐다.

 

상을 당한 로마인들은 죽은 이의 무덤에서 음식을 나누는 음복 잔치(Refrigerium)를 빼놓지 않고 거행하였다.

이 음복은 상을 당한지 3, 7, 30(동방지역에서는 3, 9, 40) 그리고 1년째 되던 날 거행하였는데 이러한 음복이 그리스도교화 되면서 성찬례, 즉 위령미사로 발전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는 로마 근교 오스티아에서 있었던 그의 모친 모니카의 장례를 회상하면서 어머니를 묻은 후에 바로 구원의 제사인 미사를 봉헌하였다고 전한다(고백록 9, 12).

 

또한 4세기 중반까지 소급할 수 있는 문헌인 <사도들의 가르침 (Didaschalia apostolorum F.X.Funk1p.276)>에서도 묘지에서 행해지는 ?미사??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처음에는 음복의 관습과 무덤에서의 미사가 함께 행해지다가 서서히 음복이 사라지고 위령미사만 남게되는 것이다.

 

위령미사를 위한 기도문은 6세기 이전에 만들어졌으며 이미 레오 성사집(Sacramentarium Leonianum)5, 젤라시오 성사집(Sacramentarium Gelasianum)13개가 수록되어 있다.

 

초기 기도문들은 죽음을 파스카 여정의 완성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안식(Requiem aeternam)에 도달함을 기쁘게 찬미하였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러 이러한 파스카적 기쁨은 사라지고 심판과 징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찬 기도문으로 변질되었다.

 

이제 죽는 날은 더 이상 태어나는 날(Dies natalis)이 아니라 심판의 날, 분노의 날(Dies irae)로 받아들여졌다.

위령미사는 중세 때에 일어난 3가지 전례적 신학적 사조와 조우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첫째, 신심미사(Missa votiva)의 등장이다.

 

미사는 파스카의 재현이라는 초대교회 이래의 미사에 관한 전통적인 생각이 점차 흐려지고 라틴어를 모르는 대중들이 미사집전에서 소외되면서

미사는 일부 성직자나 수도자의 전유물이 되기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 미사가 공동체의 모든 이를 위한 제사라기보다는 개인의 신심과 청원 등을 위해 바치는 사적인 제사로 여겨지면서

미사라는 의식 자체를 절대화하는 경향도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자연히 미사에 대한 미신적이며 주술적인 이해를 초래하였고 이때부터 미사는 개인 또는 소수의 사람을 위해서,

특별한 청원을 하기 위하거나 개인적인 일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바치는 사적인 예식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이유로 위령미사는 죽은 이들의 구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크게 성행하였다.

 

둘째, 연옥(Purgatorium)에 대한 교리가 널리 퍼져나가면서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을 위한 미사의 효험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미사를 봉헌함으로서 연옥 영혼의 고통이 감소되고 천국으로 들어올림 받는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었다.

연옥영혼이 죄를 씻고 빨리 하늘나라에 오를 수 있도록 미사를 더 자주, 더 많이 봉헌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인하여 위령미사는 매우 빈번하게 집전되었다.

 

셋째, 대사(Indulgentia)에 대한 교회의 교리가 확정됨으로써 연옥영혼을 위한 미사, 위령기도, 자선행위 등이 더욱 강조됨으로

 

급기야 미사가 지닌 공동체 모두를 위한 구원의 잔치라는 본래의 의미가 결정적으로 훼손되기에 이른다.

살아있는 사람이 위령미사를 한 대 봉헌함으로써 대사를 받고 그 대사만큼의 죽은 이가 연옥에서의 징벌을 경감 받게 된다는 식으로 대사의 효력이 오용되었다.

이로써 위령미사는 연옥영혼을 위한 만병치료제와 같은 효과를 지닌 주술적인 행위로 인식되었고 결국 미사가 지닌 공동체적이며 파스카적인 성격이 흐려지게 되었다.

연옥 영혼을 위해 30일 동안 매일 미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일한 지향으로 봉헌해야하는 그레고리안 미사도 이 때 등장하게 되었다.

 

이 그레고리안 미사"어느 죽은 수도자가 미사 30대를 통해서 연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레고리오 대교황의 대화(Dialogi 4.55, PL 77, 416-421)에 나오는 예화로부터 그 이름이 생겨났다.

이렇게 신심미사와 기원미사가 발달하면서 더 이상 주기 기념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도 연옥영혼을 위하여 위령미사를 봉헌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전통은 트렌토 공의회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위령미사의 신학

 

위령기도와 마찬가지로 위령미사의 신학적 근거를 <모든 성인의 통공에 관한 교리>,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있어서 인간의 협조에 관한 교리>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구원의 잔치에 초대받았다.

 

그러므로 산 이도 죽은 이도 모두 이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통하여 산이와 죽은 이가 이 공동체 안에서 통교를 이룬다.

그러므로 위령미사는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이 먼저 죽은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그리스도와 함께 봉헌하는 것이다.

 

미사는 파스카의 잔치이다. 이 파스카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외아들 그리스도를 희생하는 하느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미사를 통해 산 이와 죽은 이를 파스카의 영원성으로 초대하는 분이 하느님이시기에 산 이들이 봉헌하는 위령미사는 죽은 이를 위하여 의미있는 제사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스스로 마련하신 인간을 위한 구원계획에서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으신다. 오히려 인간의 협조를 통하여 그원계획을 완성하신다.

 

살아있는 동안 하느님을 믿으며 세례를 통해 새로이 태어났으나 나약함으로 인하여 세례 후에도 여전히 죄에 물든 채 살아가는 신자들이 있다.

비록 이 죄를 씻지 못하고 죽었을 때도 하느님은 여전히 구원의 팔을 펼치시며 모든 이를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신다.

 

세상을 떠났기에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옥 영혼을 위해, 살아있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는 것이 위령미사인 것이다.

 

4. 위령미사의 분류    <N0 2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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