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천국 (가톨릭신문 2002년 4월 14일)
지난 4월 8일자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한국에서 연간 150만 -200만건의 낙태시술이 행해지고 있다는, 우리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사실을 보도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며, 우리나라에서 한해 태어나는 신생아가 60만-80만명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태아 4명중 1명만이 살게 되고, 나머지 3명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하고 낙태되어 죽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뉴스위크지가 우리나라에서 낙태시술이 이처럼 성행하고 있는 이유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젊은 세대의 성개방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 사회 전반의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일부 보수적인 교회 단체에서 “피임법을 가르치는 것이 프리섹스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피임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미혼여성의 임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는 사회 분위기가 낙태를 더욱 부추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뉴스위크의 우리사회에 대한 이러한 파악은 실상 낙태천국으로서의 우리나라 사회를 설명하기에는 그리 충분하지 않다. 성교육 방향이 주로 피임교육으로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그나마 피임교육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낙태가 많아진다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접근하기를 꺼려하는 일종의 핑계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상 피임방법의 확산이 문란한 성 풍속을 조장하고 미혼여성의 임신을 증가시킴으로써 결국에는 낙태의 증가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낙태의 증가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는 현대사회의 전도된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가 다원화,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치 질서는 무너지고 인간 역시 물질화, 도구화되는 가운데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다분히 상대적인 가치로 전락되어 버린 것이다. 사회-경제적 이유 때문에 생명을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제는 그리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변질되어 버렸고,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의식을 실종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물질화, 도구화되는 우리의 현실에서 인간의 성(性) 역시 그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고 쾌락의 도구로 전락되는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도 심각하게 우려되는 점이다. 결국 무질서하고 책임이 따르지 않는 성(性)의 사용의 결과는 당연히 낙태의 증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낙태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보다도 생명의 존엄성을 확고하게 일깨우는 교육과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노력이다. 낙태천국의 우리나라가 이제 진정으로 회개할 때이며, 이를 위해 생명의 종교인 우리 그리스도교의 역할은 매우 중대하며 동시에 무겁다. 인간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증거한다는 것이 곧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는 특별히 약하고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없는 생명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이기적인 이익과 변덕에서 벗어나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우리의 마음을 돌림으로써 이 사회 전체에 생명이 넘쳐흐르도록 온갖 노력을 경주할 때라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그분의 숨결을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십니다. 인간은 이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생명의 복음」, 39항)
이동익 레미지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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